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성 페미니스트(도서) (문단 편집) ===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 답변하기 === 아무래도 "남페미는 충분히 가능하다" 는 말은 남성들에게보다는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에게 더 도발적인 게 현실이다. 실제로 국내에도 《[[근본없는 페미니즘]]》 의 공저자이자 래디컬 페미니스트인 국지혜(2017) 씨는, 한때 남성들을 동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좋은 XX는 죽은 XX|좋은 남성은 죽은 남성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밝힌다. 실제로 본서 역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자주 들고 있는 논리들이 다수 소개되면서, 이들의 주장들에 대한 광범위한 반박이 이루어지고 있다. 흔히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남페미라는 말이 "둥근 네모" 나 "밝은 그림자" 같은 표현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선적으로 언급할 인물은, 입장 이론으로 페미니즘 지식사회학에 공헌한 인물인 샌드라 하딩이다. 8장에서 Harding(1998)은 [[리버럴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래디컬 페미니즘]], [[사회주의]], [[다문화주의]], [[성소수자]] 등등의 다양한 철학적 흐름들을 검토하면서,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시각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저마다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남성들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각성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이들은 [[래디컬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8장에 따르면, 래디컬 페미니즘의 정신은 생물학적으로 XY염색체인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남성성의 젠더를 내면화한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래디컬 측에서는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먼저 "남성" 이 되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본다. 이 주장으로 유명한 래디컬 페미니스트 존 스톨텐버그(J.Stoltenberg)는 일단 '''본인부터 [[남성]]'''이었으며, 《[[포르노그래피]]》 의 저자로 유명한 안드레아 드워킨(A.Dworkin)의 남편이었는데, 모든 남성들은 가부장제의 공모자라거나 [[잠재적 가해자]]라는 등의 도발적인 주장들 사이에서 "남성들은 남성이기를 거부(refuse)하고, 그 전에 먼저 평등하고 정의로운 (젠더 중립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인간]]'''이 되어라" 라는 주장을 남긴 바 있다. 페미니즘 이론가인 로지 브라이도티(R.Braidotti)를 포함하여, 래디컬 진영에서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주장은, "남성이 페미니즘적 태도나 입장을 갖는다고 해서 페미니스트라고 볼 수 없다, 페미니스트는 한 사람이 여성으로서 평생 겪는 '''억압의 경험'''에 있다" 는 것이다. 그러나 2장의 저자 Hopkins(1998)는 이에 대해 몇 가지로 반박하는데, 우선적으로 그는 여성됨의 경험이 모두 같지 않고, 남성됨의 경험이 모두 같지 않기에 래디컬 진영이 힘을 잃은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들의 주장은 마치 [[근본주의]] [[기독교 우파]] 세력이 "남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각자의 [[성 역할]]에 충실한 전통적 사회를 수호해야 한다" 고 주장하는 것과도 [[극과 극은 통한다|서로 겹쳐 보인다]]고도 했다. 특히 이들이 [[가부장제]]에 친화적인 여성들에 대해 "[[명예남성]]" 이라며 날을 세우는 것은, 역설적으로 페미니스트의 기준이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아닌, 관점 내지 입장에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사회적 여성으로서의 주관적 경험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객관적 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를 탐구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페미니스트들에게 연락을 취하여 물어보더라도, "페미니스트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면 경험 여부가 아니라 태도 여부에 입각해서 대답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3장에서 Kimmel(1998) 역시 남페미들의 활동은 [[맨스플레인|여성의 경험에 대해 남성이 아는 척하고 알려주려 드는 것]]이 아니라고 주의를 주었으며, 13장에서 Rubin(1998)은 한때 [[정체성 정치]]의 논리에 따라 남성배제적 의견이 힘을 얻기도 했지만, 오늘날 페미니즘의 요건은 결국 '''페미니즘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가'''에 달렸다고 거들고 있다. 이에 더해 Hopkins(1998)는 2장의 미주 36번에서, [[사회학]]계 일부에서 제기되는 다른 논리에 대해서도 반론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여성들은 남성이 주위에 있을 때 남성에게 복종, 맹신, 희생하도록 [[사회화]]되었으므로, 남성들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서 남성들의 참여는 '''부득이 배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여성들만을 위한 "안전 공간" 이 필요하다는 것. 이에 대한 Hopkins(1998)의 비판은 여러 종류로 나누어진다. 우선, 여성들이 학습하거나 생산하는 활동에서 남성의 존재 자체가 유해하다면, 이는 남성들이 여성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분리되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제안밖에는 내놓지 못하게 된다. 이 논리에 따르면 공립학교에서 남녀 학생들을 나누어 [[수학]] 및 [[과학]]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만, 래디컬 진영은 또 이에 대해서는 [[성차별]]이라며 반대하는 [[모순]]을 보인다. 더불어, 남성들이 페미니즘 수업에 동참하는 것은, 여성들이 자신이 배운 바를 강의실이라는 안전한 환경에서 호의적인 남성들을 향해 '''직접 실천해 보는''' (이를테면 "학이시습지" 라 할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사실, 페미니즘 강의 자체에 대해서도, 여성들이 남성의 말을 그렇게나 맹신한다면, 이들은 대학 페미니즘 강의를 남성 강사가 진행하는 것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이 논리는 "[[DADT|게이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오픈한 게이가 곁에 있으면 이성애자들의 전투력이 떨어지니 군문에 받아줄 수 없다]]" 는 '''혐오 논리와도 상통한다'''고 한다. 앞서 소개했던 인물인 존 스톨텐버그가 강조했듯이, 래디컬 진영은 모든 남성들은 결국 직간접적으로 가부장제의 프리미엄을 받으며 공모하게 되는 입장이므로, 남페미들도 어쩔 수 없이 '''가부장적이라는 데에는 예외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는 3장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하는 Kimmel(1998)이 하소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간혹 강연이 끝난 후 매우 불편한 심기로(…) 앉아 있는 일부 여성들이 질의응답 시간에 이런저런 까칠한 질문들을 던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메시지에 작정하고 트집을 잡으려고 드는 이 여성들은 어렵지 않게 트집거리를 찾아내고, "그거 봐요, 결국 당신도 똑같은 가부장적 [[여혐]]주의자일 뿐이야. 하, 역시 모든 남성들은 다 똑같아!" 라며 안도(?)하곤 한다는 것이다. Kimmel(1998)은 이들이 남페미들에게 '''지나친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적어도 남페미들은 '''그 동기에서만큼은 진솔하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와 관련해, 9장의 저자 Brod(1998)는 이런 주장 자체가 페미니즘의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남성배제적 관점은 얼마 못 가서 페미니즘으로 정치화된 남성 개인들을 다시 파편화시켜서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래디컬 진영에서 유명한 또 다른 논리는, 남성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다면 사회로부터 온갖 칭찬과 환영을 받지만, 여성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다면 온갖 멸시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페미니스트 선언은 일종의 "[[커밍아웃]]" 이고, 남성들에게는 자신의 명성과 도덕적 우위를 더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젠더 권력]]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3장에서 Kimmel(1998)은 그 반례로서 [[프레드릭 더글러스]](F.Douglass)를 들고 있다. [[흑인]] [[남성]]인 그는 페미니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남성들 중 하나로, 세네카 폴즈(Seneca Falls) 선언에 참여한 대가로 동료 남성들과 언론에 의해서 "남자 낸시 아줌마"(Aunt Nancy Man), 도로변의 작은 소년들, 남자답지 못한 남자라는 '''[[조리돌림]]을 당해야 했다.''' 남성들의 세계에서 페미니스트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2장의 저자 Hopkins(1998)의 회고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2장의 요지를 국내의 사례와 비교하자면, 남성들 사이에서 "너 페미니스트냐?" 라는 말은 "너 [[일베저장소|일베]]하냐?" 와 동급의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남성들 사이에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은 이들이 남성성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를 보여주는 것인 셈. 래디컬 진영의 논리 중에서 본서의 공저자들이 가장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남페미들은 [[페미니즘|여성을 위한 목표를 위해 만들어진 여성만의 영역]]에 침입하여 그 '''여성들을 몰아내고 정복하는 남성을 표상한다'''는 것이다. 공저자들은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일부 인정하기도 한다. 예컨대 3장에서 Kimmel(1998)은 페미니즘 운동의 중추에는 여성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맞고, 적어도 남성들이 그것에 "동참" 하고 "촉진" 하며 "계몽" 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본다. 10장의 저자 Kahane(1998)은 남성들이 순수한 의도를 갖지 못한다 해도, 남성들이 그런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공헌이자 여성들의 소득'''이라고 제안한다. 10장의 미주 25번에서 그는 페미니스트들이 남페미들에게 '''윤리적 완전무결성'''을 다그치고 있다고 말하면서, 남페미들이 그런 목표를 지향할수록 더더욱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인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12장의 저자 Sterba(1998) 역시, 일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이나 페미니즘에 공헌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남초]] 집단에서 페미니즘을 옹호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남페미라는 것. 일부 저자들은 그런 걱정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예컨대 8장의 저자 Harding(1998)은 남페미들이 페미니즘을 오해, 도용, 침투, 사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런 생각이 의욕 있는 남페미들의 열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남페미들과의 연대를 지향하자'''는 것이지, 서로의 영토를 통일하자는 게 아니라고 부연한다. 한편 9장의 저자 Brod(1998)는 보다 직접적으로, "남성의 정치와 여성의 정치가 왜 분리되어야 하는지" 를 근본적으로 반문한다. 그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남페미들을 실무자 내지 팔로워로 만드는 것조차도 '''유해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한편으로 남페미와 페미니스트들 간의 관계는, 남페미가 여성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비생산적으로 매사 승인 받으려 하거나 의존하려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즉 남페미들이 뭔가를 기획하거나 실천할 때 그것이 정말로 페미니즘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매번 여성들에게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요?" 를 질문하여 여성들의 권위로 승인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것은, 1장의 저자 Bordo(1998)가 주장하는 것이다. 흔히 인류학자 데이비드 길모어(D.D.Gilmore)나 역사학자 대니얼 보야린(D.Boyarin)이 주장했던 것처럼 [[유대인|유대계 미국인]]들의 문화는 여성지배적 문화라거나, 유대인 남성들은 여성성이 높다는 설명이 퍼져 있는데, Bordo(1998)는 적어도 자신의 아버지만큼은 [[마피아]] 조직에 연루될 정도의 [[마초]]에다 가부장적이기 짝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볼 때, 유대인 남성들은 적어도 페미니즘에 호의적이거나, 내지는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제안한다. 유대인 문화는 굉장히 지식추구적이며 우선적으로 [[아들]]들에게 높은 지성을 요구하긴 하는데, [[딸]]들이 지적인 소양이나 적성이 있을 경우에는 '''딸들에게도 고등 교육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좋아하는 여성, 논쟁하기 좋아하는 여성, [[지성미]] 있는 여성에 대해서 유대인 남성들은 전혀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 게다가 저자는 《Bar Mitzvah》 라는 문헌 속의 한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유대인들의 [[토론]] [[문화]]는 '''반-[[권위주의]]적인 성격이 있다'''고도 하였다.[* 인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 명의 랍비가 서로 율법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랍비 B는 아까부터 별다른 근거 없이 자신의 해석이 옳다고 자꾸 랍비 A에게 우겨대고 있었다. 마침내 랍비 B가 외쳤다. "나는 근거는 없지만 내 말이 옳다는 걸 안다. 내가 옳다면 회당 밖의 강물이 거꾸로 흐를 것이다!" 그러자 정말로 강물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랍비 A는 "강물은 당신의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고 말했다. 그러자 B는 다시 "내 말이 옳다면 회당의 벽이 저절로 무너질 것이다!" 라고 말했고, 정말로 벽이 저 혼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랍비 A는 이번에도 "회당 벽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 라고 말했다. 마침내 B는 "내 말이 옳다면 하늘의 신께서 나를 증명해 주실 것이다!" 라고 말했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그의 말이 옳다. 왜 그를 믿지 않느냐?"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A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토라는 하늘에 있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거이지, 목소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남성이 여성을 깔아뭉개는 논쟁이 아니라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